17 밥 아카데미 2015-12-29 948
성경배경이야기 16. 십일조의 분량이야기

십일조는 얼마나 드려야 하나?

십일조는 명확히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소득에서부터 '하나님의 것'을 구분해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얼마가 십일조일까?

 

1. 십일조의 양

먼저 100만원에 대한 십일조를 생각한다면 보통 10만원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나님의 것으로 1/10을 떼어낸다는 그 마음이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고 싶은 부분이 또 하나가 있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해석하고 십일조의 규모를 규정할 때는 십일조는 10퍼센트가 아니라 11.8퍼센트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유대인들은 7년 안식년의 사이클(cycle)을 갖고 있다. 그래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소득을 얻기 위해 노동해서 얻은 6년 동안 드리게 되어 있었고 안식년에는 쉬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6년 동안 십일조를 구분해서 드리게 되는데 모든 십일조를 구분할 때는 가장 먼저 구분해야 할 부분이 2퍼센트의 ‘테루마’라는 것이 있다. ‘테루마’란 쉽게 이야기하자면 성전의 상근직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을 위해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100만원을 소득으로 얻었다면 십일조를 계산할 때 맨 먼저 테루마 2%를 떼어내야 한다. 그러면 2만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남은 98만원에서 비로소 ‘마아세르’라고 말하는 본격적인 십일조를 뗀다. 그러면 9만8천원이 된다. 이 9만 8천원의 십일조를 구분하는 이유가 매해 다른데, 십일조를 내는 여섯 해의 기간 중 첫 번째, 두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의 마아세르, 즉 9만 8천원들은 자기 성읍 주변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여섯 번째 해의 마아세르는 자기 소득을 발생시킬 수 없는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를 위하여 드렸다. 결국 한 사람이 한 해에 구분해야할 십일조는 매해 11만 8천원이 되며 그 안에는 성전의 상근직과 각 성읍 주변에 함께 살고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위해 주는 것 그리고 가난한 자 고아 과부들에게 주는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을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2. 십일조의 사용처

기본적으로 자기 소득을 발생시키는 것에서 하나님의 것을 구분하던 십일조는 이 공동체 안에서 ‘자기의 힘으로 소득을 발생시킬 수 없는 자’들이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쓰였다. 그런 사람들로는 첫째 레위인, 제사장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먹고 살 것 즉 소득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봉사를 하기위해 선택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께서 먹이신다고 말씀하셨다. 둘째는 가난한 자, 고아, 과부들이었다. 이들 역시 자기 힘으로 생계를 위해 소득을 발생시킬 밭도 없었고 이들을 돌봐줄 사람들도 없었기 때문에 주변의 이웃들이 돕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십일조를 집행하게 되는데 집행하는 방법은 개인이 스스로 매해의 적용 대상에게 자의적으로 주는 것이었다.

    

 

3. 십일조를 구분해내는 방법

유대인들이 십일조를 해석하고 시행하는 것을 통해 본다면 십일조를 구분해 내는 방법은 소득을 얻는 그 순간에 맨 먼저 하나님의 것부터 구분해 내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만약 십일조를 먼저 구분하지 않고 자기의 소득을 사용하다가 나중에서야 십일조를 구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면에서 맞지 않았고 또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이 섞일 수 가 있기 때문에 소득이 발생하는 즉시 먼저 하나님의 것을 구분하는 것을 권장한다. 그리고 이렇게 소득의 십일조를 구분해 내는 것은 남자들의 몫이 아니라 보통 집안의 아내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만약 ‘하나님의 것’으로써 십일조를 먼저 구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들에게 소득으로 먹을 것을 만들어 먹이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행위로 인식되었고 아내가 십일조를 구분하지 않음으로 남편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먹었는데 나중에 알았다면 그것은 이혼의 조건이 될 정도였다.

    

 

4. 제사장들은 십일조를 낼까?

십일조를 받은 제사장들도 다시 십일조를 드려야 했다. 가끔 질문들 가운데 ‘십일조를 각 개인들이 아무 제사장들에게나 자의적으로 줄 수 있었다면 많이 받는 제사장이 있을 수도 있고 적게 받는 제사장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아닙니까?’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 제사장들 가운데는 많이 받는 제사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제사장들은 누구도 가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에게 올라온 십일조는 다시 거기서 십일조를 떼어서 같은 동료 제사장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제사장들은 자신의 십일조를 주위의 가난한 동료 제사장들에게 줌으로써 제사장들에게 올라온 십일조는 계속 제사장들 사이에서 맴돌게 되고 결과적으로 모든 제사장들은 그 수입에 있어서 균등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 제사장도 십일조를 통해 부유하거나 가난하게 되지 않고 모두 균등하게 될 수 있었다.

온전한 십일조는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시이며 동시에 자기 소득을 발생시킬 수 없는 사람들의 양식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간혹 이런 질문도 듣게 된다. “그렇다면 십일조의 배경을 오늘날 교회에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적용이란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있을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원리들을 잘 기억해 본다면 오늘날 십일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또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