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밥 아카데미 2015-12-29 609
성경배경이야기 14. 배려의 법칙

성전에서의 배려의 법칙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을 성도답게 만드는 내용들 가운데 ‘배려’라는 것이 있다. 배려는 참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번 강좌에서는 성전에 존재하던 배려의 법칙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성전은 모든 면에 있어서 경직되고 규제가 심하고 딱딱한 법칙들만 있었던 곳이 아니다. 오히려 성전의 모든 규칙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었던 곳이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배려의 법칙들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런 배려의 법칙들은 오늘날 성도들의 삶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1.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도살하는 장소

레위기 4장 29절, 33절에 보면 일반 평민의 속죄제물을 도살하는 장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 속죄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제물을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요’


즉 번제물을 도살하는 장소와 속죄제물을 도살하는 장소가 동일하다. 왜일까? 랍비들의 해석에 의하면 그 이유는 속죄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허물을 가려주는 의미 때문이었다고 한다. 죄를 지은 사람이지만 속죄 제물을 갖고 온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치 않게 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해석이 가능했을까? 일반적으로 번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자원제이면서 동시에 고귀한 헌신을 의미했다. 반면 속죄제는 자신의 죄에 대해 반드시 드려야 하는 의무제였으며 참회와 통한의 회개가 포함되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번제물을 도살하는 장소와 속죄 제물을 도살하는 장소가 다르다면 사람들은 누가 번제물을 드리는지, 누가 속죄 제물을 드리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번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당연히 칭송을 받을 것이지만 속죄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비난과 수치를 당하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속죄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하나님은 비록 죄를 지은 사람이지만 참회하고 제물을 갖고 나오는 자에게 그 수치를 가려주고 허물을 가려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치 않도록 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1] 

 

그래서 번제물을 도살하는 곳에서 속죄제물을 도살하는 이유는 어느 누가 봐도 그 사람이 번제물을 드리는 것인지 속죄제물을 드리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도록 만들어 결과적으로 속죄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속죄 제물을 갖고 성전에 나오는 사람에게 행하시는 배려란 비록 그 사람의 허물이 있다 해도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내어 수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살짝 덮어주는 것을 말한다. 성도들의 삶에도 이런 점이 필요하다.

    

 

2. 가난한 자의 제물을 처리함

살면서 배워가지만 가난한 자는 마음에 상처 받기가 쉽다. 자격지심이라고 치부될 수 있지만 가난한 자들은 그 가난이 자신의 최대의 약점이 될 수가 있다. 이런 상황은 성경시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레위기 5:8절에서는 가난한 자가 가져가는 비둘기 제물을 처리하는 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제사장에게로 가져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 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이때 비둘기의 목을 비틀어 끊는 방법을 히브리어로 멜리카(מליקה)라고 하는데 제사장의 오른손 엄지손톱을 사용하여 비둘기의 목을 뒤에서부터 앞으로 밀어 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반 번제와는 달리 속죄제의 제물로 가져온 비둘기의 머리는 그 몸에서부터 아주 분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몸에서부터 머리를 아주 분리하면 그 제물이 흉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속죄 제물로 그 비둘기를 가져온 가난한 자의 마음에 ‘내가 가난해서 내 제물을 저렇게 취급하나?’라고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의 속죄 제물을 다루는 제사장은 다른 제물로써 새를 다룰 때보다 더 신중하고 조심해야 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성전에서 보여 지던 배려의 법칙이었다.

 

사실, 배려란 몰이해와 한 치 차이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배려가 보일 수 있다. 예수의 백성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배려하고 또 배려 받으며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목사의 몫이다.